정조유신 제8부 대공위(大空位)
44화제61장 이백삼십이년
넷 — 우리가 못 만든 것
우리는 아직 답하지 못한 것이 셋 있다.

첫째, 사람이 줄어드는 문제.
1899년에 통계원이 처음 보고했다. 그때 셋째 길 — 밖에서 데려오는 것 — 을 골랐고, 그 길이 제국이 되었고, 제국이 무너졌다.
그 뒤로 우리는 그 길을 다시 걷지 못했다. 걸으면 우리가 무엇이 되는지 우리 조상이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나라의 이민 논쟁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멈춘다.
누군가 말한다. — 사람이 필요하다.
누군가 대답한다. — 백사십 년 전에도 그랬다.
그리고 대화가 끝난다.
이것이 우리가 우리 역사에서 배운 방식이다. 잘못 배운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둘째, 우리가 첫 번째가 아닌 것.
1948년에 국립과학원 총재가 말했다. — 첫 번째가 아닌 우리를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가.
칠십구 년이 지났고 우리는 아직 답하지 못했다.
우리 나라의 정치에서 가장 잘 팔리는 말은 지금도 「다시 앞서자」다.
셋째, 그리고 이 사료집이 다루는 것.
우리는 우리가 한 일을 아직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른다.
다섯 — 지난주
지난주에 나는 이 사료집의 마지막 교정을 보다가 사료원 옥상에 올라갔다.
서울의 밤이 보였다.
우리 도시는 1859년부터 밤에 불이 켜진다. 세계에서 첫 번째였다. 백육십팔 년째 켜져 있다.
그 불빛을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측명공이 우리에게 온 것이 좋은 일이었는가.
우리는 이 질문을 이백 년 동안 했고, 이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우리 자신을 정의해 왔다.
그런데 지난주 옥상에서, 나는 처음으로 이 질문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정한 것이 아니다.
그가 온 뒤에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만 우리가 정했다.
그는 우리에게 자를 주었다. 그것은 사고였다.
그 자로 우리가 무엇을 쟀는지는 사고가 아니다.
우리는 쇠를 쟀고, 땅을 쟀고, 별을 쟀고, 병을 쟀다. 그것으로 십오억 명이 죽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을 쟀다. 쓸모로 쟀다. 그것으로 이천만 명이 죽었다.
같은 자로 했다.
측명공은 마지막 장에서 이렇게 썼다.
— 다 재고 나서, 마지막에 자를 놓으라.
— 자를 놓는 자리를 아는 것이 재는 법의 마지막이다. 나는 그것을 여러분에게 가르치지 못했다.
우리는 아직 그 자리를 모른다.
다만 우리는 지금, 이백삼십이 년 만에 처음으로, 그런 자리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알게 되었다.
그것이 이 사료집이다.
『만물지서』 하권 제육권, 마지막 장.
갑오년(1834) 시월 초이일. 측명공 한주혁이 죽기 사흘 전에 쓴 것이다.
원문은 붓글씨이며, 마지막 다섯 줄은 글자가 크게 흔들려 있다.
나는 오늘 이 책을 끝낸다.
이 책은 마흔 권이다. 이 나라에 온 지 서른아홉 해가 되었으니 한 해에 한 권씩 쓴 셈이다. 나는 이 안에 내가 아는 것을 다 적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다시 보니 나는 아는 것만 적었다.
모르는 것을 적어야 했다. 그것이 더 중요했다.
그러므로 마지막 장에는 내가 모르는 것을 적겠다.
하나. 나는 내가 어디서 왔는지 끝내 설명하지 못했다.
나는 이백서른두 해 뒤에서 왔다고 말했고, 사람들은 그것을 믿었다. 믿어 준 것이 고맙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그것이 사실인지 모른다. 내가 온 곳이 뒤였는지, 옆이었는지, 아니면 아예 없는 곳이었는지 나는 모른다.
내가 떠나온 세계는 지금 어떻게 되어 있을까. 여전히 굴러가고 있을까. 아니면 내가 이 골짜기에 발을 디딘 순간 꺼져 버렸을까.
나는 그 세계에 아무도 두고 오지 않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해 왔다. 그것은 거짓말이다. 나에게는 누이가 있었다. 나는 그 애의 얼굴을 십 년 전부터 기억하지 못한다.
둘. 나는 내가 이 나라에 좋은 일을 했는지 모른다.
셈으로는 안다. 내가 살린 사람이 죽인 사람보다 사백 배 많다. 나는 그 셈을 오십 번쯤 해 보았다. 셈은 늘 같은 답을 낸다.
그런데 셈이 답을 내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
내가 오기 전의 조선은 가난했고 병들었고 무지했다. 그러나 조선은 남의 것을 빼앗지 않았다. 조선은 오백 년 동안 한 번도 이웃을 치지 않았다. 그것은 조선이 착해서가 아니라 힘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나도 안다.
그래도 결과는 그러했다.
지금 조선은 부유하고 건강하고 무엇이든 만든다. 그리고 팔 년 전에 대마도 앞바다에 함대를 보냈다.
나는 이 둘 중 어느 조선이 나은지 모르겠다. 나는 서른아홉 해 동안 첫 번째 조선을 두 번째 조선으로 바꾸는 일을 했고, 그것이 옳은 일이라고 믿었으며, 지금은 믿지 못한다.
셋. 나는 내가 무엇을 이 나라에 심었는지 몰랐다.
나는 기술을 심었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내가 심은 것은 한 문장이었다.
을묘년 팔월, 나는 희정당 뜰에 엎드려 선왕께 아뢰었다. 백열다섯 해 뒤에 이 나라가 왜에 먹힌다고. 그때 나는 그 말이 이 나라를 살릴 것이라고 믿었다.
그 말은 이 나라를 살렸다. 그리고 그 말은 이 나라 안에 들어가 다른 것이 되었다.
먹히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물음에 답은 하나뿐이다. 먼저 먹으면 된다.
나는 그 답을 말한 적이 없다.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스스로 자란다.
나는 이 나라에 두려움을 심었고, 두려움은 목적지가 없다.
넷. 나는 자(尺)를 주었다.
이 나라에 온 첫해에 나는 자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자를 만드는 데 사흘을 쓴다고 비웃었다. 지금 이 나라의 모든 것이 그 자 위에 서 있다.
자는 세상을 재라고 준 것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으로 서로를 재기 시작했다.
나부터 그랬다. 신유년에 나는 마흔한 사람의 이름 앞에서 붓을 들고, 스물아홉을 골랐다. 나는 그때 사람을 쓸모로 쟀다. 그것이 이 나라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재면 값이 나온다. 값이 나오면 싼 것이 생긴다. 싼 것이 생기면 버릴 것이 생긴다.
이 세상에 싼 사람은 없다. 나는 그것을 여든이 넘어서야 배웠고, 배운 뒤에도 끝내 가르치지 못했다.
다섯. 잴 수 없는 것에 관하여.
나는 이 나라에 재는 법을 가르치면서 한 가지를 가르치지 않았다.
잴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몰라서 안 가르친 것이 아니다. 나는 그것을 알았다. 다만 가르칠 방법을 몰랐다.
재는 법은 가르칠 수 있다. 자를 만들고 눈금을 새기면 된다. 그런데 "이것은 재지 말라"는 것은 어떻게 가르치는가. 그것에는 눈금이 없다.
나는 여기서 실패했다.
그리고 나는 이 실패가 언젠가 이 나라에 값을 물릴 것을 안다. 재는 법만 배운 나라는 잴 수 있는 것을 전부 재고, 재고 나면 다스리려 하고, 다스리려면 잴 수 없는 것을 없는 것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기 땅에서 자기 말로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은 재지 못한다.
자기가 남보다 못하더라도 자기 방식으로 하고 싶은 마음은 재지 못한다.
자기 자식을 어디로 보낼지 자기가 정하고 싶은 마음은 재지 못한다.
이것들은 장부에 칸이 없다.
칸이 없으면 없는 것이 된다.
나는 이 나라에 칸이 없는 것을 남겼고, 그것을 채워 넣는 법은 남기지 못했다.

여섯. 마지막이다.
선왕께서는 스스로를 만천명월주인옹이라 하셨다. 만 개의 냇물에 비친 달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달은 하나이나 그것이 비치는 물이 만 개이니, 만 개의 조선이 하나의 뜻으로 움직인다는 말씀이었다.
나는 그 호를 좋아했다.
지금 나는 그것이 무섭다.
달은 하나다. 그러나 냇물은 저마다 다르다. 어떤 물은 맑고 어떤 물은 흐리고 어떤 물은 얼어 있고 어떤 물은 피가 섞여 있다. 같은 달이 비쳐도 같은 것이 비치지 않는다.
나는 이 나라에 하나의 달을 주었다고 믿었다. 그런데 만 개의 물이 그것을 저마다 다르게 받았고, 나는 그 만 개를 다 볼 수 없었다.
내가 준 것은 하나였으나, 이 나라가 받은 것은 만 개였다.
그중 몇 개가 괴물이 되었는지 나는 죽을 때까지 알지 못할 것이다.
후세의 누가 이것을 읽거든, 세 가지를 청한다.
첫째, 나를 스승이라 부르지 말라. 나는 스승이 아니라 사고(事故)였다.
둘째, 내가 준 지도를 성경으로 삼지 말라. 지도는 길이 아니다. 길은 걷는 자가 만든다.
셋째,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재라.
내가 재지 않은 것들을 재라. 사람의 이름을 재고, 빼앗긴 자의 몫을 재고, 우리가 편해진 만큼 누가 불편해졌는지를 재라. 그것을 재지 않으면 그것은 없는 것이 되고, 없는 것이 되면 백 년 뒤에도 없는 채로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 재고 나서, 마지막에 자를 놓으라.
자를 놓는 자리를 아는 것이 재는 법의 마지막이다. 나는 그것을 여러분에게 가르치지 못했다.
나는 조선에게 앞날을 주었다고 믿었다.
이제 나는 안다. 내가 준 것은 앞날이 아니라, 내가 도망쳐 온 지난날이었다.
부디, 내가 틀렸기를 바란다.
궤짝을 닫는 데 한참이 걸렸다.
봉인지를 원래대로 붙일 수는 없었다. 이미 뜯었기 때문이다. 나는 새 봉인지를 만들어 붙이고, 그 위에 내 이름과 날짜를 적었다.
그리고 사흘 뒤에 사료원장에게 공개 신청서를 올렸다.
기각되었다.
여섯 달 뒤에 다시 올렸다. 기각되었다.
세 번째에 통과되었다. 반대가 셋, 찬성이 넷이었다. 한 표 차였다.
찬성한 위원 하나가 회의 뒤에 나에게 물었다.
"…최 정리관. 이걸 왜 이렇게까지 하시오."
나는 준비한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사실대로 말했다.
"저희 집안이 삼척에서 여덟 대를 유리를 만들었습니다."
"…"
"제 팔대 위 고모할머니가 최연입니다. 서른여덟에 규폐로 죽었습니다. 그분의 종손녀가 최문경입니다. 아흔까지 사셨고, 마지막 사 년을 압록강에서 죽은 사람의 이름을 찾는 데 쓰셨고, 육천이백스물한 명을 못 찾으셨습니다."
"…"
"그리고 제 증조부의 누이가 최인영입니다. 서른아홉에 처형되었습니다."
방이 조용해졌다.
"저는 그분들 중 누구의 손도 닮지 않았습니다. 저는 유리를 불 줄 모르고, 물리를 모르고, 계산을 못 합니다."
"…"
"제가 할 줄 아는 것은 문서를 정리하는 것뿐입니다."
"…"
"그래서 저는 이것을 합니다."
이 사료집을 준비하면서 나는 삼척에 세 번 갔다.
지금 그곳은 조용하다. 격물소 터에 표지석이 하나 있고, 첫 번째 유리 가마가 있던 자리에 무덤이 셋 있다.
측명공 한주혁의 무덤.
그 옆에 최연의 무덤.
그 옆에 최문경의 무덤.
측명공의 비석에는 열두 자가 새겨져 있다.
測而後知 知而後行 行而後悔
재고 나서 알았고, 알고 나서 행했고, 행하고 나서 뉘우쳤다.
최연의 비석에는 여섯 자가 있다. 그녀가 죽기 전에 남긴 말에서 딴 것이다.
오늘 하십시오.
최문경의 무덤 앞에는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은 화강암 판이 하나 있다.
그녀의 유언대로다. — 내 이름을 비석에 새기지 말고, 내가 못 찾은 육천이백스물한 사람의 자리를 비워 두라.
나는 세 번째로 갔을 때 그 빈 판 앞에 오래 서 있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의 모든 기념비 중에서,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저것이 가장 정확하다.
옛 서양력으로 오늘은 2027년 3월 17일이다.
측명공이 사라진 해다.
그가 살던 세계에서 오늘 아침에 누군가 출근을 했다면, 그 사람은 자기 나라가 한때 세계의 절반을 다스렸다가 놓았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자기 나라가 백 년 가까이 남의 나라였고 그 뒤에 둘로 갈라졌다는 사실만 알 것이다.
어느 쪽이 나은가.
나는 이 서문을 이 년 동안 쓰면서 그 질문에 답하려 했고, 실패했다.
다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이긴 적이 없다. 그리고 진 적도 없다.
우리는 1940년 십일월에 협상 탁자에서 걸어 나왔고, 우리 도시는 하나도 부서지지 않았고, 우리 지도자는 아무도 법정에 서지 않았고, 우리는 그 뒤 팔십 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였다.
그래서 우리는 배우지 못했다.
패한 나라는 배운다. 굴욕이 기억을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굴욕당하지 않았고, 그래서 우리에게는 기억 대신 통계만 남았다.
우리는 배상금을 팔백조 원 냈다. 한 번도 늦추지 않았다.
그리고 1961년에 인도네시아가 요구한 그 한 문장은, 아직도 우리 교과서에 없다.
그러므로 나는 답 대신 그분이 시킨 것을 하겠다.
이 사료집의 부록 제1권부터 제11권까지는 명부다.
삼척 과학혁신기구에서 죽은 사람 사천육백여든셋.
대관령과 관동선에서 죽은 사람 삼천육백열하나.
압록강 특별사업에서 죽은 사람 이만 사천삼백아홉. 그중 이름이 없는 육천이백스물하나.
대전에서 동원되어 돌아오지 못한 사람 삼백사십일만.
콜롬보 십사만 육천.
수라바야 이십육만.
자바에서 굶어 죽은 사람 — 이 숫자는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 우리는 지금도 세고 있다.
이름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이름을 적었다.
알 수 없는 사람은 알 수 없다고 적었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다.
그리고 그것이, 이백 년 전에 한 사람이 삼척의 헛간에서 시작한 일이다.
그는 그날 밤 이름 두 개를 적었다. 백복령에서 떨어져 죽은 짐꾼 둘이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유신 이백삼십이년 삼월
>국립사료원 제3고 정리관
>최은서(崔恩瑞)
— 『정조유신(正祖維新)』 끝 —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완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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