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유신 제7부 대전(大戰)
40화제55장 정전(停戰)
동맹은 1941년 팔월에 첫 번째 폭탄 실험에 성공한다.
정전 아홉 달 뒤였다.

만약 전쟁이 아홉 달만 더 갔더라면 세계는 다른 곳이 되었을 것이다. 역사가들이 백 년 동안 이 아홉 달을 두고 다툰다.
통계
이 전쟁의 사망자 집계는 1948년에 처음, 1971년에 개정, 1996년에 재개정, 2019년에 다시 개정되었다.
현재 공식 추계는 이렇다.
| 구분 | 사망자 |
|---|---|
| 조선 본토인 (군인) | 1,940,000 |
| 조선 본토인 (민간) | 290,000 |
| 경위권 동원 사망 (군인·노무) | 3,410,000 |
| 경위권 기근 사망 | 1,900,000 ~ 3,400,000 |
| 대서양동맹 (군인) | 4,120,000 |
| 대서양동맹 (민간) | 1,860,000 |
| 콜롬보 | 146,000 |
| 수라바야 | 260,000 |
| 중립국 및 기타 | 780,000 |
| 합계 | 약 1,470만 ~ 1,620만 |
이 표에서 조선 국립사료원이 지금까지 확정하지 못한 유일한 칸이 「경위권 기근 사망」이다.
백오십만 명의 폭이 있다.
백오십만 명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세계에서 가장 잘 세는 나라였던 조선이 아직 모른다.
이 부(部)의 제목은 역사학자들이 붙인 것이 아니라 당대 사람들이 붙인 것이다. 1940년부터 1988년까지의 사십팔 년을 조선 사람들은 대공위라 불렀다. 임금의 자리가 비었다는 뜻이 아니다. 세계의 주인 자리가 비었다는 뜻이다.
조선은 그 자리에서 내려왔고, 아무도 그 자리에 올라오지 않았다. 사십팔 년 동안 세계에는 주인이 없었다.
그것이 좋았는지 나빴는지를, 우리는 아직도 정하지 못했다. — 편찬자 주
『의정원 회의록』 신사년(1941) 정월 — 전후 처리에 관한 제1차 논의
의원 김상헌이 물었다. — 우리는 진 것이오, 이긴 것이오.
의장 장인철이 답했다. — 우리는 그만둔 것이오.
의원 김상헌이 다시 물었다. —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반성해야 하오.
회의록에는 이 뒤로 아무 발언도 적혀 있지 아니하다.
전쟁이 끝나고 조선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먼저 적는다.
점령이 없었다. 외국 군대가 조선 땅을 밟지 않았다.
재판이 없었다. 조선의 지도자 중 누구도 법정에 서지 않았다.
혁명이 없었다. 의정원은 그대로였다. 1941년 이월의 총선에서 여당이 졌으나, 진 쪽과 이긴 쪽 모두 전쟁을 결정한 그 의정원의 의원들이었다.
해체가 없었다. 제국 과학원도, 화학원도, 통계원도, 계산원도 그대로 있었다. 이름만 바뀌었다. 「제국」이 「국립」이 되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조선은 자기가 무엇을 했는지 말하지 않았다.
이것이 이 세계의 이십세기 후반을 이해하는 열쇠다.
패전국은 반성한다. 반성이 강요되기 때문이다. 점령군이 교과서를 고치고, 법정이 열리고, 지도자가 처형되고, 국민이 자기 나라가 무엇을 했는지를 남의 입으로 듣는다. 그것은 굴욕이고, 굴욕은 기억을 만든다.
조선은 굴욕당하지 않았다.
조선은 협상 탁자에서 걸어 나왔고, 국경 안으로 돌아왔고, 폭탄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
그러므로 조선은 반성할 이유가 없었다.
1941년 삼월, 의정원이 「전쟁 조사위원회」를 설치했다.
위원장은 일흔셋의 전 통계원장 남기환이었다. 신축년 남양 인광석 배정안을 쓴 사람이고, 1911년 폭탄 제조에 찬성표를 던진 다섯 중 하나다.
조사위원회는 이 년을 일했고, 1943년에 보고서를 냈다.
『대전 조사 보고서』, 천사백여든 쪽.
결론은 이러했다.
— 이 전쟁의 원인은 대서양동맹의 봉쇄 정책이었다.
— 조선은 자원 접근을 차단당했고, 국가의 존립을 위해 부득이 개전하였다.
— 다만 다음 세 가지에서 판단의 오류가 있었다. 첫째, 개전 시점의 판단. 둘째, 신형 폭발물의 조기 사용 판단. 셋째, 경위권 통치의 경직성.
— 위 세 가지는 정책 판단의 오류이며 범죄가 아니다.
범죄가 아니다.
이 다섯 글자가 조선의 팔십 년을 결정한다.
수라바야에 관한 서술은 보고서 천사백여든 쪽 중 열한 쪽이었다.
콜롬보는 열네 쪽이었다.
자바 기근은 세 쪽이었고, 사망자 수는 "정확한 파악이 곤란함"으로 적혔다.
압록강 시설의 이만 사천삼백구 명은 나오지 않았다. 그 명부는 국가기밀이었고, 조사위원회는 열람 권한을 신청했으나 기각되었다.
기각한 것은 조사위원장 자신이 위원으로 있던 국가보안위원회였다.
『대전 조사 보고서』가 나온 지 사흘 뒤, 조선의 한 신문에 짧은 기고가 실렸다.
기고자는 여든한 살의 퇴역 관리였다. 이름은 박승규.
병기국 총제조였고, 캄차카에서 첫 폭발을 보았고, 콜롬보 표적 선정에서 도시 밖을 주장했다가 지고 명령서에 서명한 사람이다.
기고문 전문은 이렇다.
— 나는 이 보고서를 다 읽었다. 이틀 걸렸다.

— 나는 이 보고서에서 내 이름을 찾았다. 열두 번 나온다. 전부 직책과 함께 사실 관계를 서술하는 대목이다. "병기국 총제조 박승규가 …에 서명하였다." 틀린 데가 하나도 없다.
— 나는 이 보고서가 정직하다고 생각한다. 여기 적힌 것 중 거짓은 없다.
— 다만 나는 이 보고서를 읽고 나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것이 이상해서 다시 읽었다. 두 번째에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 그래서 나는 왜 그런지를 생각했고, 오늘 답을 얻었다.
— 이 보고서에는 잘못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오류라는 말이 나온다.
— 오류는 고치면 되는 것이다. 잘못은 값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
— 우리는 백사십 년 동안 재는 나라였다. 재는 나라는 오류를 잘 다룬다. 오류를 찾아 고치는 것이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 그런데 우리는 잘못을 다루는 법을 한 번도 배우지 않았다.
— 나는 지금 여든하나다. 나는 나흘 전에 이 보고서에서 내 이름을 열두 번 보았고, 열두 번 다 "총제조 박승규"였다. 나는 그 열두 번 중 어디에서도 사람이 아니었다.
— 나는 이 글을 신문에 낸다. 나는 재판을 받은 적이 없고 앞으로도 받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나를 재판할 법이 없다.
— 그러므로 나는 여기에 스스로 적는다.
— 나는 병자년 사월 십칠일 콜롬보에서 십사만 육천 명을 죽였다. 나는 그 명령서에 서명했다. 나는 그 표결에서 도시 밖을 주장했고 졌으며, 진 뒤에 서명했다.
— 반대하고 서명하는 자가 가장 나쁜 자다. 그것을 알면서 서명했다.
— 나는 그 뒤 칠 년을 더 살았고 아마 몇 해 더 살 것이다. 나는 연금을 받고 있다. 손자가 셋이다.
— 나는 잘 지낸다.
— 나는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기고문은 이틀 만에 회수되었다.
신문사가 자진 회수했다. 정부의 지시는 없었다. 독자들의 항의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항의의 내용은 대체로 이러했다.
— 우리 아버지가 그 전쟁에서 죽었다. 이런 글은 우리 아버지의 죽음을 모욕한다.
박승규는 1946년에 죽었다.
그의 기고문은 1994년까지 어느 문집에도 실리지 않았다.
부유한 나라
1940년대 후반부터 조선은 다시 부유해지기 시작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전쟁으로 유럽과 아메리카의 공장이 부서졌다. 조선 본토의 공장은 하나도 부서지지 않았다. 조선 본토에 폭탄이 떨어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세계가 다시 지어지는 십오 년 동안, 그 물건의 상당 부분을 조선이 팔았다.
1955년 조선의 일인당 소득은 세계 1위였다.
1965년에도 1위였다.
1975년에도 1위였다.
같은 기간 조선이 지불한 배상금은 이러하다.
1948년 인도네시아 협정 — 이십사억 원
1951년 인도차이나 협정 — 십팔억 원
1953년 일본 협정 — 육십일억 원
1956년 만주 협정 — 삼십사억 원
1961년 대서양동맹 5개국 일괄 협정 — 이백사십억 원
합계는 오늘날 화폐로 약 팔백조 원이다.
이 숫자는 조선의 교과서에 나온다. 초등학교 사학년 사회 교과서에 나온다.
그리고 다음 문장이 함께 나온다.
— 우리나라는 약속한 배상을 한 번도 늦추지 않고 지급하였다.
1961년 자카르타 회담의 회의록에, 지금 조선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대목이 있다.
인도네시아 대표가 조선 대표에게 이렇게 말한다.
— 우리는 돈을 요구하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 귀국의 교과서에 이렇게 적어 주십시오. "우리는 1936년과 1937년 자바에서 쌀을 가져갔고, 그 결과로 백구십만에서 삼백사십만 명이 굶어 죽었다. 우리는 그 수를 아직도 정확히 모른다"고.
— 그 한 문장이면 됩니다. 돈은 필요 없습니다.
조선 대표는 그 요구를 본국에 보고했다.
본국은 답하지 않았다.
대신 돈을 냈다.
『국가보안위원회 심문조서』 무술년(1958) 사월 — 피심문인 최인영(崔仁英)
문 : 언제부터 계획했는가.
답 : 십일 년 전부터입니다.
문 : 누구의 지시를 받았는가.
답 : 없습니다.
문 : 얼마를 받았는가.
답 : 없습니다.
문 : 그러면 왜 했는가.
답 : 재라고 하셔서 했습니다.
본국은 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