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유신 제7부 대전(大戰)
39화제54장 수라바야
하나 — 무너진 것은 밖이 아니었다
시작은 파업도 봉기도 아니었다.

보고서를 쓰지 않는 것이었다.
1937년 십일월, 인도차이나 민정부의 통계 보고가 예정일에 오지 않았다. 십이월에도 오지 않았다. 1938년 정월에는 자바와 보르네오와 남양 군도의 보고가 함께 오지 않았다.
이유는 아무 데도 적혀 있지 않았다. 항의도 없었다. 다만 오지 않았다.
한 달 만에 조선은 자기 제국의 절반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백사십 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잘 보는 나라였던 조선이, 눈을 감았다.
『제국 통계원 긴급 각서』 1938년 2월.
— 신들이 아뢰옵니다. 지금 제국 남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통계원은 알지 못하옵니다.
— 우리 장부는 우리가 훈련시킨 자들이 채워 왔습니다. 그들이 붓을 놓으면 우리 장부는 백지가 되옵니다.
— 신들은 오늘 처음으로, 우리가 세계를 재어 온 것이 아니라 세계가 우리를 위해 스스로를 재어 준 것이었음을 알았사옵니다.
— 저들이 재기를 그만두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옵니다.
무인년 이월, 반둥에서 「경위권 임시 자유평의회」가 선언되었다.
의장은 자바인 화학기사였다. 부의장 셋 중 하나가 인도차이나인 철도기사, 하나가 보르네오인 광산감독, 하나가 일본인이었다.
일본인 부의장의 이름은 아오키 겐타로(靑木健太郞). 서른넷. 수라바야 제3화학공장의 기술부장이었다.
제국 화학원장 아오키 도모에의 손자다.
둘 — 넉 달
봉기는 넉 달 만에 경위권 남부 전체로 번졌다.
조선군은 진압하지 못했다. 남부에 있던 조선군의 팔 할이 동맹과 싸우고 있었고, 남은 이 할은 자기들이 지켜야 할 도시의 주민들에게 포위되었다.
칠월이 되자 봉기군이 수라바야를 장악했다.
수라바야는 경위권 남부 최대의 공업 도시였다. 인구 팔십사만. 정유 시설, 화학 공장, 조선소, 그리고 조선 제국 남양 함대의 주 보급 기지.
수라바야를 잃으면 조선은 수마트라 석유를 본토로 보낼 수 없었다.
칠월 십일일, 서울에서 최고전쟁평의회가 열렸다.
제249차 회의. 이 회의록은 소각되었다. 남아 있는 것은 1972년에 기증된 사본의 뒷부분 여덟 쪽뿐이다.
참모총장: …현재 병력으로 수라바야 탈환은 불가능합니다. 최소 십이만이 필요하고 우리에게는 사만이 있습니다.
의장 장인철: 그러면 어떻게 하오.
참모총장: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공백)
장인철: …말하시오.
참모총장: 세 번째 것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회의록에 이십이 분간의 공백)
병기국 총제조 박승규: …반대합니다.
참모총장: 총제조.
박승규: 저것은 우리 도시입니다.
참모총장: 지금은 반란군의 도시입니다.
박승규: 저 도시에 우리 국민 팔십사만이 있습니다. 그중 반란에 가담한 자는 통계원 추계로 사만입니다. 나머지 팔십만은 그냥 사는 사람들입니다.
참모총장: 총제조. 그 팔십만이 반란군을 먹이고 재우고 있습니다.
박승규: 그것은 그 사람들이 거기 살기 때문입니다.
(공백)
화학원장 아오키 도모에: …신이 한 말씀 아뢰겠습니다.
장인철: 원장.
아오키: 신은 스물일곱 해 전, 이것을 만들자는 데 표를 던진 다섯 중 하나입니다.
아오키: 그날 최문경 총재께서 저희에게 세 가지를 물으셨습니다. 우리가 죽인 사람의 수를 아는가. 그것을 백성에게 숨기지 않는가. 만들지 말자는 자가 벌을 받지 않는가.
아오키: 셋 다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저희는 만들었습니다.
아오키: 총재께서 그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만들면 밖으로 나가기 전에 안으로 먼저 쓰인다고. 그것은 총재의 말씀이 아니라 측명공의 말씀이었습니다.
아오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이 방에서 그 말씀대로 하려 하고 있습니다.
장인철: 원장. 그러면 반대하시는 것이오.
아오키: …
장인철: 원장.
아오키: …신은 기권하겠습니다.
(공백)
아오키: 신이 기권하는 이유를 기록에 남겨 주십시오.
아오키: 신의 손자가 저 도시에 있습니다.
아오키: 그러므로 신은 이 표결에서 사사로움을 뗄 수 없습니다. 반대해도 사사롭고 찬성해도 사사롭습니다.
아오키: 신은 사십 년 동안 이 나라의 화학을 맡았고, 오늘 처음으로 계산할 수 없는 자리에 섰습니다.
아오키: …기권하겠습니다.

표결.
찬성 열하나. 반대 셋. 기권 하나.
무인년 칠월 십칠일 오전 열한 시 이십육 분.
수라바야 상공 이천사백 척에서 폭발했다.
즉사 십삼만 사천.
그해 안에 사망 이십일만.
십 년 안에 사망 이십육만.
이십육만 명 전원이 대조선 제국의 신민이었다.
셋 — 그리고 제국이 끝났다
폭발 나흘 뒤, 조선 제국 관보에 짧은 발표가 실렸다.
— 수라바야의 반란은 진압되었다.
진압된 것이 맞았다. 임시 자유평의회 지도부 열아홉 중 열넷이 그 도시에 있었고, 열넷 다 죽었다.
그리고 그 나흘 뒤부터, 제국이 끝나기 시작했다.
칠월 이십사일. 나가사키 고등공업학교 교수 사십일 명이 연명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유란은 비어 있었다.
칠월 이십육일. 제국 과학원 소속 외국 출신 정원 삼백일흔둘 중 이백사십일 명이 출근하지 않았다.
칠월 삼십일. 만주 봉천의 철도 관리국 직원 만 이천 명이 일제히 근무를 중단했다. 파업 선언은 없었다. 그냥 오지 않았다.
팔월 사일. 대만 총독부 지방관 이백구십 명이 인장을 반납했다.
팔월 십일일. 일본 서부의 육군 사단 셋이 명령 수령을 거부했다.
팔월 십칠일. 조선 본토 삼척 격물소에서 국원 사백열두 명이 작업을 중단하고 인정전 앞으로 갔다.
그들이 든 것은 종이 한 장이었다.
『삼척약조』 제1조를 적은 것이었다.
— 재고 묻지 않는다(不問門地).
넷 — 아오키 도모에
아오키 도모에는 팔월 이십사일에 죽었다.
예순여섯이었다.
화학원 자기 집무실에서 죽었고, 사인은 청산가리였다. 자기가 만든 것이었다.
책상 위에 세 통이 있었다.
첫째는 사직서였다.
둘째는 봉함된 문서였다. 겉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 제국 과학원 특별사업 제3호 관련 전 기록. 소각하지 말 것.
이 문서 덕분에 우리는 무인년 칠월의 회의록을 갖고 있다. 그녀가 서기의 사본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지키게 했다.
셋째는 짧은 편지였다. 받는 사람이 없었다.
— 나는 오십 년 동안 이 나라를 사랑했다. 이것은 변명이 아니라 사실이다.
— 나는 열두 살 때 나가사키에서 조선말을 쓰지 않았다고 목에 패를 걸었다. 나는 그 나라의 화학원장이 되었다. 이 나라는 나에게 그런 나라였다. 이 나라는 나를 일본인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이 나라는 나에게 시험을 보게 했고 내가 붙었다.
— 나는 그 사실 때문에 이 나라를 사랑했고, 그 사실 때문에 이 나라의 모든 것을 견뎠다.
— 나는 스물일곱 해 전에 폭탄을 만들자는 데 표를 던졌다. 나는 그날 세 가지 물음에 다 아니라고 답하고도 찬성했다. 나는 그날 이 나라가 그 물음을 통과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 그 나라에 그것을 쥐여 주었다.
— 지난달 나는 기권했다. 기권은 반대가 아니다. 나는 그것도 안다.
— 나의 증조부께서 백 년 전에 편지에 이렇게 쓰셨다. 조선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조선을 배운 뒤의 우리가 무섭다고.
— 그분은 틀리셨다. 우리는 조선을 배운 뒤의 우리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그냥 조선이 되었다. 그것이 더 나쁘다.
— 나의 손자 겐타로는 수라바야에서 죽었다. 서른넷이었다. 나는 그 아이가 반란에 가담한 것을 알고 있었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이 나라에 한 유일한 배신이다.
— 나는 그 아이가 옳았다고 생각한다.
— 그 아이는 우리가 그 아이에게 가르친 대로 했다. 재어 보았고, 장부가 틀렸다고 말했다.
— 우리는 그 아이를 우리가 가르친 것으로 죽였다.
— 아오키 도모에
『마카오 협정』 경진년(1940) 십일월 이일 — 전문(前文)
— 본 협정은 강화조약이 아니다. 어느 쪽도 항복하지 아니한다. 어느 쪽도 승리를 선언하지 아니한다.
본 협정은 다만 사격의 중지를 약정한다.
전쟁은 이기지 못한 채 끝났다.
1938년 가을부터 1940년 여름까지 이 년 동안, 조선과 동맹은 서로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각자 확인했다.
동맹은 조선 본토에 상륙할 수 없었다. 조선은 폭탄을 아직 네 개 더 갖고 있었고, 상륙 함대는 그것을 쓰기에 완벽한 표적이었다.
조선은 동맹 본토에 닿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제 조선에는 아시아에 남은 것이 없었다. 경위권은 1939년 여름까지 사실상 전부 이탈했다.
1940년 여름 조선이 실효 지배하는 땅은 한반도, 만주 남부, 그리고 대만이었다.
백사십오 년 전 측명공이 도착했을 때의 조선보다 조금 넓었다.
『마카오 협정』의 내용은 열아홉 조였다. 핵심은 다섯이다.
一. 조선 제국은 만주 남부를 제외한 모든 해외 영토와 조차지에 대한 권리를 포기한다.
二. 조선 제국은 일본의 독립을 승인한다.
三. 경위결제망은 국제 공동 관리로 이관한다.
四. 조선 제국은 신형 폭발물의 보유 및 생산을 계속한다. 대서양동맹은 이를 문제 삼지 아니한다.
五. 배상 문제는 별도 협의한다.
넷째 조항이 이 협정의 성격을 규정한다.
조선은 폭탄을 내놓지 않았다.
내놓게 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놓게 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