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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제49장 대전(大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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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의 계산

1937년 시월, 제국 통계원이 전쟁 전망 추계를 냈다.

정조유신 36화 제49장 대전(大戰) — 헤더컷

문서 번호 통-정축-일일사. 열아홉 쪽. 결론은 한 문단이었다.

— 현재 추세로 계속할 경우, 조선 제국이 조직적 저항을 유지할 수 있는 기간은 삼십일 개월에서 사십이 개월이옵니다.

— 이 추계에는 신형 폭발물의 사용이 포함되어 있지 아니하옵니다.

— 신들은 그것을 포함한 추계를 낼 수 없사옵니다. 계산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계산에 넣는 순간 그것을 쓰는 것을 전제하게 되기 때문이옵니다.

— 통계원은 정책을 권고하지 아니하옵니다. 다만 이 문단을 남기는 것을 허락해 주시기 바라옵니다.


『제국 해군성 손실 일보』 1937년 11월 30일

— 금월 상실 상선 사십일 척, 십구만 팔천 톤. 금월 준공 상선 십일 척, 오만 사천 톤.

— 금월 격침 확인 적 잠수함 십사 척.

— 신들이 아뢰옵니다. 우리는 적 잠수함을 적이 만드는 것보다 빨리 격침하고 있사옵니다. 그럼에도 우리 상선은 우리가 만드는 것보다 빨리 가라앉고 있사옵니다.

이 두 문장이 동시에 참인 이유를 아래에 아뢰옵니다.

대전의 승패를 실제로 가른 것은 콜롬보도 수라바야도 아니었다.

바다였다.

하나 — 조선이 앞선 것

조선 해군은 잠수함을 잡는 데 세계에서 가장 뛰어났다.

소리로 잡았다.

물속에서는 소리가 공기 중보다 네 배 반 빨리 가고 훨씬 멀리 간다. 배 밑에 소리를 내는 장치를 달고 되돌아오는 메아리를 들으면 물속에 무엇이 있는지 안다.

『만물지서』 중권 제십사권에 세 줄로 적혀 있었다.

— 박쥐는 눈이 어두우나 어둠 속에서 벌레를 잡는다. 소리를 내고 되돌아오는 것을 듣기 때문이다.
— 물속에서도 같은 것을 할 수 있다. 소리를 내고 메아리가 돌아오는 데 걸린 시간을 재면 거리를 안다.
— 소리를 내는 것은 수정을 쓰라. 어떤 돌은 누르면 전기가 나고 전기를 걸면 떨린다. 그 떨림이 소리다.

압전 효과였다.

조선은 그것을 임인년(1902)에 실용화했다. 처음에는 수심을 재는 데 썼다. 대전이 나자 잠수함을 잡는 데 썼다.

조선 구축함 한 척이 잡은 적 잠수함의 평균은 삼 점 사 척이었다.

동맹 구축함이 잡은 조선 잠수함의 평균은 영 점 팔 척이었다.

둘 — 그런데 왜 졌는가

수학 때문이다.

조선은 배를 지켜야 했고, 동맹은 배를 가라앉히기만 하면 되었다.

이 비대칭이 전부다.

— 조선의 상선 하나가 수마트라에서 부산까지 오는 데 십팔 일이 걸린다.
— 그 십팔 일 동안 그 배는 계속 표적이다.
— 동맹 잠수함 하나가 그 항로에서 한 달을 버티면 평균 두 척을 잡는다.
— 조선이 그 잠수함을 잡는 데는 구축함 세 척과 항공기 여섯 대와 열이틀이 든다.
— 잠수함 한 척을 만드는 값은 구축함 한 척의 오분의 일이다.

즉 조선은 잘 잡았지만, 잘 잡을수록 손해였다.


『제국 해군성 각서』 1937년 12월.

— 신들이 이 전쟁의 셈을 다시 하였사옵니다.

— 우리는 적 잠수함 한 척을 잡는 데 우리 국력의 얼마를 쓰고 있는가. 적은 우리 상선 한 척을 잡는 데 자기 국력의 얼마를 쓰고 있는가.

— 우리 쪽이 사 점 칠 배이옵니다.

— 이 비율은 우리가 기술을 개량해도 크게 바뀌지 아니하옵니다. 지키는 쪽이 치는 쪽보다 늘 비싸기 때문이옵니다.

— 신들이 아뢰옵니다. 이 전쟁에서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옵니다. 적이 우리보다 먼저 지치는 것이옵니다.

— 그런데 적은 우리보다 사람이 다섯 배 많고 공장이 세 배 많사옵니다.

— 신들은 이 각서를 쓰는 것이 두렵사옵니다. 그러나 재지 않은 것은 없는 것이라 하였사옵니다.

셋 — 배에 탄 사람들

조선의 상선단은 대전 개전 시 삼천사백 척, 선원 십구만 명이었다.

종전 시 남은 배가 사백열두 척, 선원 사만 천 명이었다.

죽은 선원이 팔만 육천이다.

그중 조선 본토 출신이 만 사천, 나머지 칠만 이천이 남양·인도차이나·일본 출신이었다.


『제국 해운조합 위령록』, 1949년 편찬.

— 우리 조합은 종전 후 구 년 동안 죽은 선원의 이름을 찾았다.
— 팔만 육천 중 이름을 확인한 것이 오만 삼천이다.
— 나머지 삼만 삼천은 승선 명부가 배와 함께 가라앉았으므로 찾을 길이 없다.
— 특히 남양에서 현지 고용한 선원의 경우, 애초에 명부에 이름이 아니라 번호만 적힌 경우가 많았다.
— 우리는 이 사실을 여기 적어 둔다.


이 위령록에 실린 증언 하나가 이 세계의 조선 문학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대목이다.

증언자는 유조선 「동해 제17호」의 기관사였다. 자바 출신, 당시 스물여섯.

— 우리 배는 1937년 8월에 잠수함에 맞았습니다.

— 기름을 실은 배가 맞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배가 불이 되고 바다도 불이 됩니다. 물에 뛰어들어도 물이 탑니다.

—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뒤쪽 갑판에 있었고 바람이 반대였습니다.

정조유신 36화 제49장 대전(大戰) — 전환컷

— 배가 가라앉는 데 사십 분 걸렸습니다. 그 사십 분 동안 저는 바다에서 헤엄쳤고, 제 앞으로 사람들이 떠내려갔습니다. 대부분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 구조된 것은 열아홉 명입니다. 배에는 예순여덟이 타고 있었습니다.

— 조선 해군 구축함이 우리를 건졌습니다. 갑판에 올라가니 장교가 명부를 들고 이름을 물었습니다.

— 저는 이름을 말했습니다. 장교가 명부를 뒤졌습니다. 한참 뒤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 이름은 여기 없소. 번호가 있소."

— 저는 제 번호를 몰랐습니다.

— 장교가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정말로 미안해했습니다. 그 사람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 저는 그날 이후로, 제가 죽었으면 아무도 제가 죽은 줄 몰랐겠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 저는 지금 자카르타에서 배를 고칩니다. 아들이 둘입니다.

— 저는 두 아이의 이름을 아주 길게 지었습니다. 이유는 저도 모릅니다.


『제국 방송원 내규』 제11조 (1911년 제정, 1933년 개정)

— 방송은 다음을 내보내지 아니한다.

一. 확정되지 아니한 사망자 수

二. 진행 중인 군사 작전

三. 경위권 내의 소요에 관한 보도

四. 본원이 판단하기에 백성의 사기를 해치는 것

전쟁을 겪은 조선 본토 사람들의 이야기는 오래 기록되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들은 폭격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칠 년 동안 조선 본토에 떨어진 폭탄은 없다. 조선 도시는 하나도 부서지지 않았다.

그래서 조선의 전쟁 기억에는 잿더미가 없다.

하나 — 있었던 것

배급. 1934년부터. 쌀, 무명, 기름, 설탕, 그리고 고무.

배급표는 통계원이 발행했다. 사람마다 나이와 직업과 노동 강도에 따라 양이 달랐고, 계산은 기계가 했다.

조선의 배급은 세계에서 가장 공평했다. 이것은 조선인의 자랑이고 사실이다. 암시장 규모가 동맹 국가들의 오분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 공평함은 조선 본토에서만 적용되었다.

경위권의 배급 기준은 따로 있었다. 자바의 성인 남자 하루 배급 열량은 조선 본토의 오십사 퍼센트였다.

이 두 숫자를 한 표에 놓은 문서는 1938년까지 없었다.

삼교대. 공장이 스물네 시간 돌았다. 『공장 보호 조목』은 본토에서는 유지되었다. 하루 여섯 시진 이상 일을 시키지 않았다.

여자. 1938년 조선 본토 공장 노동자의 오십칠 퍼센트가 여성이었다.

아이. 학제가 십 년에서 팔 년으로 줄었다. 줄어든 이 년만큼 아이들이 일찍 일터로 갔다.

그리고 편지.

둘 — 몰랐던 것

조선 본토 사람들이 전쟁 중에 몰랐던 것의 목록.

— 페르시아 전역의 실제 전사자 수. 1915년에 십칠만이었고 공표된 것이 이만 삼천이었다.
— 대전의 실제 전사자 수. 1937년까지 공표된 누적 전사자는 삼십일만이었다. 실제는 백사십만이었다.
— 경위권 동원 노무자의 사망률.
— 자바의 기근.
— 압록강에서 무엇을 하는지.
— 콜롬보에서 무엇이 일어났는지. 관보에는 「실론 방면 적 함대 격멸」이라고만 나왔다.
— 수라바야에서 무엇이 일어났는지. 관보에는 「수라바야의 반란은 진압되었다」고만 나왔다.


이 목록이 이 소설의 마지막 아이러니다.

세계에서 가장 잘 세는 나라의 국민이, 자기 나라가 무엇을 하는지 가장 몰랐다.

세는 것과 알리는 것은 다른 일이다.

조선은 백사십 년 동안 전자를 완벽하게 했고 후자를 한 번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셋 — 그러나 아주 몰랐던 것은 아니다

여기서 정직해야 한다.

조선 사람들은 전부 속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죽었다는 통지가 왔다. 통지는 한 집에만 오지만, 마을에는 집이 많다.

1937년 무렵 조선의 시골 마을에서는 누구나 알았다.

— 나라가 말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죽는다.


1938년, 경상도의 한 마을에서 나온 편지가 남아 있다. 아들에게 보내려다 부치지 못한 것이다.

— 아들아.

— 지난달에 아랫말 김씨네가 통지를 받았다. 이번 달에 건넛말에서 둘이 받았다. 우리 마을에서 올해 여덟이다.

— 나는 신문을 본다. 신문에는 우리가 이기고 있다고 한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믿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

— 그런데 아들아, 이기고 있는데 왜 이렇게 많이 죽느냐.

— 나는 이 물음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아랫말 김씨한테도 안 했다. 그 사람 아들이 죽었는데 내가 그런 걸 물으면 안 되지 않느냐.

— 그래서 나는 아무한테도 안 묻고 너한테만 쓴다.

— 그리고 너한테도 부치지 않을 것이다.

— 부치면 검열에 걸린다는 걸 나도 안다.

1938년, 경상도의 한 마을에서 나온 편지가 남아 있다. 아들에게 보내려다 부치지 못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