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유신 제5부 격차(隔差)
22화제30장 장부(帳簿)
넷 — 경위결제망(經緯決濟網)
여기서 조선은 다른 나라들이 백 년 뒤에나 하게 되는 일을 한다.

전신망 위에 결제망을 얹은 것이다.
기존의 국제 결제는 배로 은을 실어 나르거나, 환어음을 사람이 들고 다니는 방식이었다. 한 번 거래에 석 달이 걸렸다.
정묘년(1867), 조선은 세계 삼십일 개 상관을 전신선으로 잇고 각 상관에 계정을 두었다. 봄베이의 상인이 리버풀의 상인에게 값을 치르면, 실물 은은 움직이지 않고 두 상관의 장부에서 숫자만 옮겨졌다.
석 달이 하루가 되었다.
이 시스템에 조선은 이름을 붙였다. 『경위결제망』. 세로줄과 가로줄로 세계를 얽는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 망에는 규칙이 있었다.
— 망에 드는 나라는 조선의 도량형과 회계 양식을 쓴다.
— 망을 쓰는 상인은 거래를 조선 상관에 등록한다.
— 조선은 등록된 거래를 열람할 수 있다.
— 조선은 특정 상인 또는 특정 나라를 망에서 뺄 수 있다.
마지막 조항이 무엇을 뜻하는지, 처음에는 아무도 몰랐다.
신사년(1881), 조선은 그것을 처음으로 썼다.
시암 왕국이 조선 궤간 대신 영국 궤간으로 철도를 놓기로 결정한 직후, 시암 상인들이 경위망에서 제외되었다.
넉 달 뒤 시암은 결정을 뒤집었다.
총알 한 발 쓰이지 않았다.
다섯 — 빚
조선의 마지막 발명은 가장 조용했다.
남의 나라에 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무진년(1868)부터 조선은 청, 시암, 페르시아, 오스만, 그리고 뒤에 남미의 여러 나라에 대규모 차관을 제공했다. 조건은 늘 셋이었다.
一. 돈은 조선의 철도·항만·전신 건설에만 쓴다. 시공은 조선 회사가 한다.
二. 담보는 그 나라의 관세 수입으로 한다.
三. 원리금 상환이 늦어지면 조선이 그 나라 세관을 직접 운영한다.
세 번째 조항이 제국이었다.
경진년(1880), 오스만이 상환에 실패했다. 조선 재무관 마흔둘이 이스탄불에 들어가 세관을 접수했다.
군대는 오지 않았다. 조약도 없었다. 오스만은 여전히 독립국이었고 술탄은 여전히 술탄이었다.
다만 그 나라의 세금이 어디로 갈지를 정하는 사람이 조선 사람이었다.
『만국형세도』 제사판(1885) 총론.
— 예로부터 나라를 갖는 방법은 셋이었다. 쳐서 갖고, 사서 갖고, 물려받아 갖는다.
— 우리는 네 번째를 만들었다. 빌려주어 갖는다.
— 이 방법은 앞의 셋보다 낫다. 첫째, 사람이 죽지 않는다. 둘째, 값이 싸다. 셋째,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그 나라가 스스로 원한다.
— 우리가 이스탄불에 들어간 것은 우리가 원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서명해서였다. 그들은 지금도 우리를 침략자라 부르지 못한다. 계약이 있기 때문이다.
— 이것이 우리가 서양보다 나은 점이다. 서양은 남의 땅을 가지면서 총을 썼다. 우리는 붓을 쓴다.
— 붓은 총보다 오래간다.
이 총론을 쓴 사람은 예순셋의 장세환이었다.

『영국 외무성 극동국 내부 각서』 1863년 4월 — 「조선 문제에 관하여」
이 각서를 읽는 분들께 먼저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이 지난 이십 년 동안 조선에 관해 알고 계신 것을 전부 잊어 주십시오. 그것은 대부분 1830년대의 정보이며, 그 시절의 조선은 지금 존재하지 않습니다.
서양이 조선을 알아본 것은 세 단계였다.
첫 단계는 무시였다. 1832년부터 1842년까지.
린지 선장의 보고서는 광저우에서 런던까지 여덟 달이 걸렸고, 외무성 서랍에서 다시 넉 달을 잤다. 처음 읽은 차관보는 여백에 이렇게 적었다.
— 이 사람은 열병을 앓았던 것 같다.
두 번째 단계는 부정이었다. 1842년부터 1855년까지.
아편전쟁에서 영국군은 청군이 든 조선제 소총을 노획했다. 울리치 병기창이 그것을 분해했다.
보고서가 남아 있다.
— 총열 내부에 네 줄의 나선 홈이 있으며 피치가 정확합니다. 우리 브런즈윅 소총도 강선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 점은 놀랍지 않습니다.
— 놀라운 것은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노획된 열두 정을 전부 분해하여 부품을 섞은 뒤 다시 조립했습니다. 열두 정 전부가 조립되었고 전부 발사되었습니다.
— 각하, 우리 공장에서는 그것이 되지 않습니다. 총 하나는 그 총의 부품으로만 조립됩니다. 우리 총기공은 마지막에 줄로 갈아 맞춥니다.
조선인은 갈아 맞추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맞았습니다.
이 보고서를 읽은 영국 병기청장은 그것이 우연이라고 판단했다. 노획품 열두 정이 우연히 한 장인의 손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그는 다시 확인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세 번째 단계는 공포였다. 1855년 이후.
계기는 무기가 아니었다.
설탕이었다.
을묘년(1855), 인도 벵골의 인디고 농장주들이 파산하기 시작했다. 조선제 합성 남색 염료가 시장을 잠식했기 때문이다. 이 년 만에 인디고 가격이 팔십 퍼센트 떨어졌고, 벵골에서 사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동인도회사의 세수가 무너졌다.
같은 해 프랑스 아비뇽 일대의 꼭두서니 재배가 끝났다.
같은 해 오스만의 소라 염색 길드가 문을 닫았다.
세계 삼 대륙의 농업이 삼 년 만에 무너졌는데, 그 원인은 한 나라의 화학원 실험실 한 칸이었다.
이때 처음으로 유럽의 정치가들이 같은 질문을 했다.
— 저들은 다음에 무엇을 무너뜨리는가.
『영국 외무성 극동국 각서』 1863년, 「조선 문제에 관하여」 본문 중.
一. 우리는 무엇을 아는가
확인된 사실만 적습니다.
조선은 국토가 영국 본토보다 조금 작고 인구는 약 이천사백만입니다. 석탄과 철이 있으나 우리보다 적고 질이 나쁩니다. 석유는 없습니다. 고무도, 유황도, 주석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조선은 다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 전국을 잇는 전신망. 우리보다 24년 앞섰습니다.
— 물로 전기를 만드는 시설 최소 11개소.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 밤에 불이 켜지는 도시 6개.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 인이 든 광석으로 강철을 만드는 법.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 석탄 찌꺼기로 색과 약을 만드는 산업.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 국민 전체의 출생·사망·질병 기록 67년치.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 그리고 우리가 그 목록을 다 알지 못한다는 사실.
二. 우리는 어떻게 뒤졌는가
저는 이것이 이 각서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인이 우리보다 영리하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그들의 자원은 우리보다 적습니다. 자본도 적습니다. 인구도 적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앞선 이유를 저는 세 가지로 봅니다.
(가) 그들은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습니다.
우리 과학자들은 자연을 더듬습니다. 그들은 목적지를 향해 걷습니다. 저는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설명하지 못합니다. 다만 그들의 연구가 늘 "이것을 확인하라"는 지시로 시작한다는 첩보가 있습니다. 마치 답을 미리 아는 자가 시험문제를 낸 것처럼.
(나) 그들은 실패를 기록합니다.
우리 공장주는 실패한 시험을 감춥니다. 부끄럽고, 경쟁자에게 알려지면 손해이기 때문입니다. 조선은 실패를 기록하지 않는 자를 처벌합니다. 그 결과 그들은 우리가 백 번 헛디딜 길을 한 번만 헛디딥니다.
(다) 그들의 연구소는 죽지 않습니다.
우리의 발명은 개인의 것입니다. 그 사람이 죽으면 끝납니다. 조선의 발명은 기관의 것입니다. 그들의 삼척 기구는 68년째 같은 장부를 씁니다. 68년입니다, 각하. 우리에게 68년 된 연구기관은 하나도 없습니다.
三.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저는 네 가지를 건의합니다.
첫째, 국가가 과학 연구에 직접 돈을 대야 합니다. 이는 우리 전통에 어긋납니다. 그러나 조선을 이기려면 조선의 방식을 써야 합니다.
둘째, 전국의 출생과 사망을 정확히 등록해야 합니다. 이것은 사치가 아닙니다. 조선의 보험업이 세계를 삼키고 있는 이유가 그 장부입니다.
셋째, 조선에 사람을 보내야 합니다. 상인이 아니라 학자를 보내야 합니다. 배우게 해야 합니다.
넷째, 그리고 이것이 가장 어려운 건의입니다.
우리는 프랑스와 손을 잡아야 합니다.
저는 이 문장을 쓰면서 제 손이 부끄럽습니다. 저는 트라팔가에서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각하, 산수를 보십시오. 우리 혼자로는 조선을 따라잡지 못합니다. 우리와 프랑스와 프로이센과 아메리카가 각각 따로 뒤쫓으면 넷 다 뒤집니다. 넷이 아는 것을 합치면 뒤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조선의 강점은 그들이 하나의 장부를 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이기려면 우리도 하나의 장부를 써야 합니다.
극동국 서기관 A. W. 손힐
이 각서는 1863년에 묵살되었다.
1871년에 다시 꺼내졌다.
1886년에 그대로 실행되었다.
그때는 늦어 있었다.
『만국형세도』 제3판 부록 「파급(波及)」, 갑자년(1864)
— 우리는 지난 삼십 년 동안 우리가 만든 것이 우리 나라에 무엇을 했는지를 재어 왔다. 이 부록은 처음으로 다른 것을 잰다. 우리가 만든 것이 남의 나라에 무엇을 했는가.
결과는 우리가 예상한 것과 전혀 달랐다. 우리는 우리가 물건을 팔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나라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조선이 세계에 한 일 중 가장 큰 것은 전쟁이 아니었다.
전쟁은 나중 일이다.
조선이 세계에 한 첫 번째 일은, 아무도 의도하지 않은 것이었다.
조선이 세계에 한 첫 번째 일은, 아무도 의도하지 않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