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유신 제4부 철혈(鐵血)
15화제21장 이양선(異樣船)
먼저 올라온 것은 셋이었다. 관복 차림 둘과 평복 차림의 젊은이 하나.
젊은이가 갑판에 서서 말했다.

"Good morning. I am an interpreter of the Bureau of Foreign Trade. May I speak with your master?"
린지 선장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는 여덟 해 동안 중국 연안을 다녔다. 그가 아는 동아시아의 규칙은 단순했다. 배가 닿으면 관리가 나와서 떠나라고 한다. 문서를 주면 받지 않는다. 통역은 없다. 있어도 광둥 말과 서툰 포르투갈어를 섞어 쓰는 늙은 매판(買辦)이다.
지금 그의 앞에 선 것은 스물대여섯 먹은 조선 사람이었고, 억양이 이상하지만 문법이 정확한 영어를 썼으며, 무엇보다—
—손에 공책과 연필을 들고 있었다.
조선 측이 배에서 한 일은 세 가지였다.
첫째, 화물 목록을 요구했다. 린지가 내주자 통역이 품목마다 수량과 원산지를 물었고, 두 번째 관리가 그것을 받아 적었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그들은 이미 광저우와 마카오에서 흘러나온 영국 상선의 화물 구성을 십오 년치 축적해 두고 있었다. 그들은 확인하러 온 것이었다.
둘째, 배 안을 둘러보았다.
린지는 그것을 허락한 것을 오래 후회하게 된다.
그들은 선창과 대포와 돛을 대충 보았다. 대신 세 군데에서 오래 머물렀다.
첫 번째는 조타실의 크로노미터 앞이었다.
통역이 그것을 보고 관리에게 무어라 말했다. 관리가 앞으로 나와 유리 뚜껑 너머의 계기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품에서 자기 것을 꺼냈다.
린지는 그것을 보고 숨을 멈췄다.
같은 물건이었다. 크기가 조금 작고 케이스가 놋쇠가 아니라 흰빛 나는 가벼운 쇠였다. 그러나 원리가 같았다. 보정 밸런스, 퓨지 체인, 두 겹 헤어스프링.
관리가 물었다.
"이것은 한 달에 얼마나 어긋납니까."
린지가 대답했다.
"…이 초쯤이오."
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기 것을 들어 보였다.
"우리 것은 하루에 사 초 어긋납니다. 한 달이면 백이십 초입니다."
"…"
"우리가 뒤졌습니다. 육십 배 뒤졌습니다."
린지는 그때 조금 안심했다.
그가 안심한 것이 실수였다.
관리가 이어서 말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여섯 해 전에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여섯 해 만에 하루 사 초까지 왔습니다. 선생 나라는 이것을 몇 해 만에 하셨습니까."
린지는 대답하지 못했다.
해리슨의 첫 시계에서 그 배의 크로노미터까지 영국이 걸린 시간은 팔십 년이었다.
두 번째는 선의(船醫)의 약장이었다.
관리가 약병을 하나하나 들어 라벨을 읽었다. 그리고 물었다.
"이 배에 사람이 몇입니까."
"…예순일곱이오."
"광저우를 떠나 여기까지 오는 동안 몇이 죽었습니까."
"둘이오."
"무엇으로."
"하나는 열병이고 하나는… 다쳐서 곪았소."
관리가 공책에 적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우리 배는 스물다섯 명에 하나가 죽습니다. 선생 배는 서른셋에 하나입니다. 우리가 뒤집니다."
린지는 그 말을 듣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평생 동안 사람이 항해에서 죽는 것을 세어 본 적이 없었다. 세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었다.
세 번째는 항해일지였다.
관리가 그것을 펴 보고 나서 처음으로 표정을 바꿨다.
"…선생. 여기 풍향과 풍속이 적혀 있는데, 풍속은 무엇으로 재셨습니까."
"…재지 않았소. 보고 적은 것이오."

"…"
"강풍, 순풍, 미풍, 그런 식이오."
관리가 통역과 짧게 조선말로 이야기했다. 린지는 그중 한 단어만 알아들었는데, 그것은 뒤에 그가 몇 번이나 되뇌게 되는 말이었다.
짐작.
셋째로, 그들은 문서 한 장을 내밀었다.
— 조선국 통상국 제안서
린지가 그것을 읽었다.
一. 귀국의 요구는 통상이라 들었다. 우리는 통상을 원한다. 다만 우리가 원하는 조건이 있다.
二. 우리가 팔 것은 다음과 같다. 판유리, 광학 유리와 렌즈, 안경, 정밀 저울과 자, 소독약, 우두 종묘, 표백분, 시멘트, 강선 소총과 그 탄약.
三. 우리가 살 것은 다음과 같다. 유황, 고무, 백금, 수은, 초석, 역청탄, 그리고 서적이다. 특히 서적이다.
四. 값은 은으로 셈한다. 아편은 받지 않는다. 아편을 실은 배는 조선의 어느 항구에도 들어오지 못한다. 이것은 흥정하지 않는다.
五. 귀국이 우리에게 팔 것이 없다면 우리는 사지 않는다. 우리는 팔지 않아도 곤란하지 않다. 이 점을 귀국 정부에 분명히 전하라.
린지가 마지막 조항에서 손이 떨렸다.
그는 여덟 해 동안 청나라 관리들에게 똑같은 말을 들어 왔다. 천조(天朝)에는 없는 것이 없으니 너희 물건은 필요 없다. 그것은 허세였다. 청은 실제로는 아편에 목이 매여 있었고 은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 문서의 다섯째 조항은 허세가 아니었다.
팔 것이 있으면 팔라. 그것은 대등한 상인의 말투였다.
린지는 사흘을 더 머물렀다.
넷째 날, 조선 측이 뜻밖의 제안을 했다. 원한다면 물과 땔감을 얻는 동안 뭍에 내려도 좋다는 것이었다.
그는 내렸다.
그리고 여덟 시간 동안 본 것을, 그는 뒤에 이렇게 적는다.
『기밀보고 제114호』 부속서 —「내가 본 것」
— 우리가 상륙한 곳은 홍주 고대도 맞은편의 작은 포구입니다. 조선의 큰 항구가 아니며, 통역의 말로는 인구 이천의 어촌입니다. 저는 이 점을 특별히 강조합니다. 우리가 본 것은 그들의 수도가 아니라 변두리의 작은 마을입니다.
— 부두. 돌을 쌓아 만든 것이 아니라 회색 인조석을 부어 만든 것이었습니다. 물속에서 굳는 회(灰)라고 합니다. 저는 로마의 유적에서 이런 것을 본 적이 있으나 살아 있는 항구에서 본 것은 처음입니다.
— 기둥. 부두에서 마을 안쪽으로 나무 기둥이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고, 그 위에 자기(磁器)로 만든 흰 잔 같은 것이 달려 있으며, 잔에서 잔으로 금속선이 이어져 있습니다. 저는 통역에게 저것이 무엇이냐 물었습니다.
— 통역이 대답하기를, 말을 보내는 줄이라 했습니다. 저는 웃었습니다. 통역이 저를 데리고 마을 안의 작은 건물로 갔습니다. 안에 젊은이가 앉아 있었고, 책상 위에 작은 쇠 손잡이가 있었으며, 그가 그것을 두드리자 딱딱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다른 소리가 되돌아왔습니다.
— 통역이 말하기를, 지금 한성에 물었고 한성이 대답했다 했습니다. 한성은 여기서 이백 마일 떨어져 있습니다.
— 저는 그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시험했습니다. 저는 제 주머니에서 스페인 은화 한 닢을 꺼내 주조 연도와 조폐국 표시를 종이에 적어 접은 뒤, 그것을 한성에 보내 다시 읽어 보라고 했습니다.
— 사 분 뒤에 답이 왔습니다. 연도와 표시가 정확했습니다.
— 각하. 저는 그 자리에 앉아야 했습니다.
— 병원. 마을에 회칠한 건물이 있고 문에 붉은 표지가 있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니 벽에 큰 표가 걸려 있었습니다. 통역이 읽어 주었습니다. 지난 열두 달 동안 이 마을에서 태어난 아이의 수, 죽은 사람의 수, 죽은 원인, 나이별로 나눈 것이었습니다.
— 저는 물었습니다. 이것을 왜 벽에 걸어 두는가.
— 그가 대답했습니다. 이 마을 사람이라면 누구나 몇 사람이 무엇으로 죽었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 각하, 영국에는 이런 표가 없습니다. 런던에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나라에서 한 해에 몇 사람이 무엇으로 죽는지 모릅니다.
— 아이들. 마지막이 가장 중요합니다. 저는 마을 학당 앞을 지났습니다. 창으로 들여다보니 아홉 살이나 열 살쯤 된 아이 서른 명이 앉아 있었고, 앞의 검은 판에 무언가가 적혀 있었습니다.
— 그것은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기호였습니다. 저는 케임브리지에서 삼 년을 배웠고, 그 판에 적힌 것 중 절반을 알아보았습니다. 대수(代數)였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제가 모르는 것이었는데, 통역에게 물으니 "변하는 것을 재는 법"이라 했습니다.
— 각하. 뉴턴 경의 유율법(流率法)입니다. 열 살짜리들이 배우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날 저녁 배로 돌아와 선실에서 술을 마셨습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만 사실대로 적습니다.
로드 애머스트호는 아흐레 만에 떠났다.
떠나기 전날, 린지는 조선 측 대표에게 사적으로 물었다.
"…묻고 싶은 것이 있소."
"말씀하십시오."
"이 모든 것을… 언제부터 하셨소?"
관리가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삼십칠 년입니다."
"삼십칠 년."
"우리에게 사람이 하나 왔습니다."
린지가 눈을 들었다.
"…누구요."
"모릅니다."
"…모른다니."
"우리도 모릅니다.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분은 재는 법을 가르치고 재작년에 돌아가셨습니다."
관리가 뱃전 너머 조선의 산을 보았다.
"…그분이 우리에게 늘 하시던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이오."
"재지 않은 것은 없는 것이다."
『의정원 회의록』 임진년 시월 초삼일 — 제사백열두차 회의
안건: 이양인 응접 및 국외 반출 금지 품목에 관한 건
발의: 통상국. 참석 구십사. 회의 시간 여섯 시진.
※ 본 회의록은 백 년간 비공개로 봉함되었다.
린지의 배가 떠난 지 넉 달 뒤, 의정원에서 조선 역사상 가장 긴 회의가 열렸다.
안건은 하나였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팔 것인가, 감출 것인가.
린지의 배가 떠난 지 넉 달 뒤, 의정원에서 조선 역사상 가장 긴 회의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