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유신 제3부 경신(庚申)
12화제15장 신유(辛酉)
그가 이름을 부른 것은 스물아홉이었다.
이가환의 이름을 불렀다. 그가 없으면 계산소가 서지 않는다.

정약용의 이름을 불렀다. 부를 필요도 없었다. 그는 이미 명단에 없었다. 그는 삼척에 있었고, 삼척에 있는 자는 손을 대지 못한다는 것이 유조 일곱째 조목의 뜻이었다.
정약종의 이름은 부르지 않았다.
그가 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신자였고, 한글로 교리서를 썼고, 배교하지 않겠다고 했다.
한주혁은 그 이름 앞에서 붓을 두 번 들었다 놓았다.
그리고 넘어갔다.
신유년 이월 스무엿새, 서소문 밖에서 열두 명이 참수되었다.
정약종이 그 안에 있었다.
이승훈이 그 안에 있었다.
한주혁은 그날 삼척에 있었다.
그는 그날 격물소에 나가지 않았다. 방에 앉아 있었다.
저녁에 정약용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 시진쯤 지나서 정약용이 말했다.
"…형님이 죽었소."
"…"
"총재께서 이름을 부르지 않으셨다지요."
한주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정약용이 자리에 앉았다.
"나는 총재를 원망하지 않소."
"…"
"내가 총재였어도 그리했을 거요. 우리 형님은 셈을 못 하고 쇠를 모르오. 그러니 부를 이유가 없지."
"…"
"그런데 총재."
정약용의 목소리가 떨렸다.
"오늘 총재께서 하신 일이 무엇인지 아시오?"
"…압니다."
"모르시오."
정약용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붉었다.
"오늘 총재께서는 조선에 새로운 저울을 하나 세우셨소. 그 저울은 사람을 답니다. 쓸모로 답니다."
"…"
"그 저울은 오늘 처음 쓰였고, 앞으로 계속 쓰일 거요. 백 년 뒤에도 쓰일 거요. 그리고 백 년 뒤에 그 저울에 오를 사람은 우리 형님 같은 사람이 아니라, 나라 전체일 거요."
정약용이 일어섰다.
"총재께서는 재지 않은 것은 없는 것이라 하셨소. 오늘 총재께서는 우리 형님을 재셨고, 값이 없다 하셨소."
"…"
"나는 총재께 하나만 청하겠소."
"…말씀하십시오."
"장부에 적으시오."
한주혁이 고개를 들었다.
"…"
"총재께서는 사람이 죽으면 장부에 적으신다 하셨소. 가마에서 죽은 형제도 적으셨고, 백복령에서 떨어진 짐꾼도 적으셨소. 오늘 죽은 열둘도 적으시오."
"…그들은 국원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적으시오."
정약용이 문을 열었다.
"국원이 아닌 사람이 국 때문에 죽은 것을 적지 않으면, 그 장부는 장부가 아니라 자랑이오."
그날 밤 한주혁은 장부를 폈다.
일흔세 번째 줄부터 여든네 번째 줄까지, 열두 개의 이름을 적었다.
그리고 그 옆에 사인을 적었다.
— 사인: 본 국(局)의 존속.
이백 년 뒤, 국립사료원의 정리관은 이 열두 줄을 발견하고 사흘 동안 일을 못 했다고 적었다.
『삼척약조』 제5조
바깥에 말하지 아니한다(不出於外). 어기는 자는 목을 벤다.
얀 데 브리스는 오 년을 삼척에서 살았다.
그는 유리를 불었고, 냉각관을 감았고, 조선말을 배웠으며, 삼척 여자와 혼인해 아들을 하나 낳았다. 아들의 이름은 안복(安福)이라 지었다. 얀의 이름을 조선식으로 옮긴 것이었다.
그는 행복해 보였다.
신유년 여름, 그가 한주혁을 찾아왔다.
"총재님. 부탁이 있습니다."
조선말이 꽤 늘어 있었다.
"…말씀하시오."
"편지를 보내고 싶습니다."
한주혁의 손이 멈췄다.
"…어디로."
"바타비아입니다. 어머니께서 살아 계십니다. 내가 죽은 줄 아실 겁니다."
한주혁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엇이라 쓰시겠소."
"살아 있다고 쓰겠습니다. 그것만 쓰겠습니다."
"어디에 있다고는 안 쓰시겠소?"
얀이 웃었다.
"…써야지요. 안 쓰면 어머니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한주혁은 창밖을 보았다.
삼척 앞바다가 보였다. 그 바다 너머 어딘가에 나가사키가 있고, 광저우가 있고, 바타비아가 있었다.
"…얀."
"예."
"당신이 그 편지를 보내면, 유럽 사람들이 조선 동해안에 유리 공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오."
"…"
"그리고 오 년 안에 배가 옵니다."
얀의 얼굴이 굳었다.
"…총재님. 저는 유리 만드는 법을 쓰지 않을 겁니다."

"쓸 필요 없소. 있다는 것만 알면 되오."
"…"
"당신은 십 년 전 청나라에 영국 사절이 왔던 것을 아시오? 그자들이 무엇을 하고 갔는지 아시오? 아무것도 안 하고 갔소. 다만 보고 갔소. 그리고 사십 년 뒤에 함대를 끌고 왔소."
얀이 한 걸음 물러섰다.
"…총재님. 제 어머니는 일흔입니다."
"…"
"편지 한 장입니다."
한주혁은 그 자리에서 결정하지 못했다.
그는 얀에게 이레만 기다리라고 했다.
얀은 기다리지 않았다.
닷새째 되는 날, 그는 삼척포에서 부산으로 가는 상선에 편지를 실었다. 왜관을 거쳐 나가사키로, 나가사키에서 네덜란드 상관을 통해 바타비아로 가는 경로였다.
편지는 왜관에서 걸렸다.
오세형의 사람이 걸러냈다. 오세형은 왜관에 삼십 년 있었던 사람이었고, 조선에서 나가는 모든 서찰을 검열하는 체계를 그가 직접 만들었다.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사랑하는 어머니께. 저는 살아 있습니다. 코레아라는 나라의 동쪽 바닷가에 있습니다. 이곳은 이상한 곳입니다. 이 사람들은 오 년 전에 유리도 만들 줄 몰랐는데 지금은 저보다 잘 만듭니다. 이 사람들은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는 무섭습니다. 어머니, 저는 이곳에서 아내와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러니 슬퍼하지 마십시오. 다만 이 편지를 받으시거든 누구에게도 보이지 마십시오.
의정원에서 표결이 있었다.
찬성 육십칠, 반대 서른.
『삼척약조』 제5조에 따라 참(斬).
한주혁은 반대표를 던졌다.
그가 의정원에서 던진 첫 번째 반대표였다.
집행 전날 밤, 그는 옥으로 갔다.
얀은 벽에 기대 앉아 있었다.
한주혁을 보고 그가 웃었다.
"…총재님. 제가 이레를 기다렸어야 했지요."
"…"
"기다렸으면 어떻게 하셨을 겁니까."
한주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미안하오."
"미안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압니다. 총재님은 저를 살리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런데 못 하셨지요."
"…"
"총재님."
얀이 창살 사이로 손을 냈다.
"제 아들을 국원으로 받아 주십시오."
한주혁이 그 손을 잡았다.
"…받겠소."
"글을 가르쳐 주십시오. 조선 글도 가르치고 서양 글도 가르쳐 주십시오."
"…가르치겠소."
"그리고…"
얀이 잠시 말을 멈췄다.
"…제 아들이 크면, 아비가 왜 죽었는지 말해 주십시오.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한주혁은 그 밤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삼척일지』 제18권, 신유년 칠월 십칠일.
— 오늘 얀 데 브리스가 죽었다. 마흔이었다. 죄목은 약조 제5조 위반이다.
— 총재가 형장에 나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형이 끝난 뒤 총재가 나에게 이르기를, 이 사람의 이름을 장부에 적으라 하였다. 사인을 무엇으로 적으리까 물으니, 총재가 한참 있다가 이렇게 적으라 하였다.
— "사인: 우리가 무서워서."
— 기록 서유구
『의정원 회의록』 신미년 정월 초아흐레
의원 백종환이 아뢰기를, 평안도에서 난이 일어났다 하옵니다. 의원 오상묵이 묻기를, 어찌하여 하필 평안도이옵니까. 백종환이 대답하지 못하였다. 총재 한주혁이 일어나 말하기를, 신이 답을 아옵니다, 하고 자리에 앉았다. 회의록에는 그 답이 적혀 있지 아니하다.
관동 신작로는 십일 년이 걸렸다.
경신년 겨울에 시작해서 신미년 여름에 끝났다. 한양에서 원주를 거쳐 강릉으로, 강릉에서 해안을 따라 삼척으로. 폭은 열두 자. 수레 두 대가 비껴갈 수 있는 너비였다.
가장 어려운 데가 대관령이었다.
한주혁은 처음에 고개를 넘는 길을 굽이치게 내려 했다. 경사를 완만하게 하려면 길이 길어져야 했다. 그러나 굽이가 열아홉 개가 되자 총연장이 배로 늘었고, 겨울에 눈이 쌓이면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굴을 뚫기로 했다.
발파는 흑색화약이었다. 삼척에서 만든 초석과 왜황과 목탄. 구멍을 뚫고 화약을 재고 심지에 불을 붙이고 달아난다. 그것뿐이었다.
십일 년 동안 대관령에서 사백열한 명이 죽었다.
화약이 일찍 터져 죽은 자가 백여든셋. 굴이 무너져 죽은 자가 백서른아홉. 낙석이 예순둘. 나머지는 병과 사고였다.
한주혁은 그 사백열한 개의 이름을 전부 장부에 적었다.
그리고 신미년 유월, 굴이 뚫린 날 그는 그 앞에 서서 오래 있었다.
옆에 있던 장만복이 말했다.
"…나리. 뚫렸소."
"…"
"기뻐하실 줄 알았는데."
한주혁은 굴 안의 어둠을 보고 있었다.
"…두목. 우리가 이 길로 무엇을 옮기게 되겠소."
"쇠도 옮기고 유리도 옮기고 석탄도 옮기겠지요."
"그것뿐일까요."
장만복이 어깨를 으쓱했다.
"군사도 옮기겠지요. 그게 뭐 어떻소. 길이 다 그런 거 아니오."
한주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여섯 달 뒤에 그 길로 군사가 지나갔다.
신미년 십이월, 평안도에서 난이 일어났다.
홍경래였다.
실제 역사에서 이 난은 넉 달을 갔다. 정주성에 들어앉은 봉기군을 관군이 포위하고 굶기고 성벽 밑에 굴을 파서 화약을 터뜨려 무너뜨렸다. 죽은 자가 이천이 넘었다.
이 세계에서는 엿새였다.
이 세계에서는 엿새였다.